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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풍 문화재 단지는 충주댐의 건설로 인해 물에 잠긴 청풍면 후산리와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는 많은 문화유적들을 모아 조성한 것이다. 단지 안에는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 43점의 문화재를 옮겨 놓았고 네 채의 민가에 생활 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수몰되기 전의 풍경과 원래 자리를 지키던 유적들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은 전시관도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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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풍 문화재 단지의 입구에 있는 청풍 팔영루의 모습이다. 청풍 팔영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팔작지붕 건물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5호로 지정되었다. 1702년에 청풍부사 이기홍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1870년에 부사 이직현이 금남루와 함께 중수해놓았다. 청풍명월의 팔경을 즐기기 위하여 세웠다고 하는 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문의 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나 심하게 퇴색하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소재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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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 지곡리 고가(입구)의 모습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집은 원래 제원군 수산면 지곡리 웃말에 있는 강부원 씨 소유의 고택이었으나 충주댐 수몰로 인하여 이곳 물태리에 위치한 청풍문화재 단지 내로 다시 옮겨 복원하였다.


 전체 배치는 전면의 바깥마당에 면하여 정면 3칸, 측면 1칸의 一자형 문간채가 있는데 여기에 난 중문을 들어서면 넓은 안마당이 있다. 그 안마당 우측 편에 ㄱ자형의 안채가 있다. 특히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한번 꺾어서 들어가도록 처리하여 안주인이 주로 사용하는 안채의 폐쇄성을 엿볼 수 있다. 안채의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一자형 평면을 먼저 만든 후 우측면에 정면 2간, 측면 2간을 앞으로 더 붙여 전체적으로 ㄱ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의 평면 구성은 중앙에 낸 1칸의 작은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뒷편에 반침을 낸 1칸의 건넌방을 드렸다. 그리고 대청 우측 편에는 1칸의 안방과 2칸의 부엌을 ㄱ자형으로 꺾이는 부분에 드린 후 부엌 상부을 다락으로 꾸몄으며, 이어서 1칸의 찬마루를 드렸는데 부엌과 찬마루의 벽을 판벽으로 쳤다.


 구조는 2벌대로 쌓은 자연석기단 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머리에 양봉을 끼우지 않고 납도리로 된 주심도리와 대량만을 결구시켜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지붕틀은 대량 위에 동자주를 직접 놓고 종도리를 받고 있는 3량가구이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이루고 있다. 특히 안채와 곳간채 사이에 담장을 쳐서 안마당과 구분하여 사랑방 기능을 하고 있는 건넌방의 독립성과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한 점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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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 청풍 금남루의 모습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팔장지붕건물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청풍현 관아의 문루로서 1825년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창건하여 스스로 도호절제아문이라는 누제를 수서하였으며, 그 뒤 1870년에 청풍부사 이직현이 중수하였고 1900년에 부사 현인복이 보수하였다.


 석조팔각 고주석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누대를 만든 겹처마 팔작지붕의 누문이다. 상층부분에는 계자난간이 돌아가면서 설치되어 있다.본래의 위치는 제천시 청풍면 읍리로서 청풍초등학교의 교문으로 사용되어오다가 충주댐 공사로 인하여 수몰되게 되자 한벽루·금병헌·응청각 등의 관아건물과 함께 원래의 관아건물 배치 모습으로 현재의 위치에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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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풍금병헌의 모습이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다. 1단으로 쌓은 석축기단 위에 덤벙주춧돌을 놓고, 네모 기둥과 둥근 기둥을 함께 써서 지었다.


 공포는 익공식이며, 기본 가구는 1고주 5량이며, 겹처마집이다. 내부는 동편은 우물마루이고 서편은 2칸의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1681년에 부사 오도일이 창건하였고, 1705년에 부사 이희조가 중건하였다.


 또, 1726년에 부사 박필문이 개축하였으며, 권돈인이 편액을 썼다. 1900년에 부사 현인복이 전체적으로 보수하였다. 이곳은 관아의 동헌으로 집무를 행하였으며, 부속건물인 옥사는 조선말기에 없어졌다.


 현재 권돈인이 쓴 ‘금병헌’이라는 현판은 없고 객관이었던 청풍관에 걸려 있던 이희조가 쓴 ‘淸風館’이라는 현판이 옮겨져 걸려 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원래 자리는 수몰되었고 건물은 1983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지었다. 이 때 원형에 맞도록 내부의 구조와 기둥·서까래·마루장 등을 일부분 보수하였다.

 전반적으로 청풍 문화재 단지는 마음에 들었고, 댐의 건설로 인햐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문화재들을 옮겨 복원해서 후손이 볼 수 있도록 한 점은 매우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옮겨 놓는 것만이 다가 아니고 주기적으로 점검 및 보수를 해서 건물이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료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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