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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인간은 왜 철학을 하는 걸까?

장혜철 2014.11.11 13:32
인간은 왜 철학을 하는 걸까?
-휘닉스. <철학의 즐거움> 중에서-

철학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질문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이 세계에는 끝이 있는 것일까?" 라든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라는 식의 끝없이 펼쳐지는 방향으로의 쟐문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한번은 스스로 물어본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학문이라도 결정적인 해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고 배우더라도, 그 상태를 뚜렷이 형상화할 수는 없으며, 계속해서 팽창하는 그 끝에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은 계속된다. 아마도, 그 질문에 확실한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이 갖게 되는 질문 속에는 정답을 줄 수 없는 물음이 함축되어 있는 모양이다.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질문이라기 보다는 '어떤 대답을 얻더라도 제대로 납득이 가지 않는 질문' 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질문이다' 라고 말하는 것 중 다른 하나로는, 철학이란 답을 낼 수 없는 형식의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상태에 도달하면 좋은가를 가르쳐주는 기술' 이라는 점이다. 해답이 나오지 않는 이런 질문은 아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드넓은 세상의 존재를 알았을 때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그러한 질문을 통해 자신이 세상 속의 일부라는 것을 실감하고,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세상 속으로 들어오기 위한 입문의례의 역할을 완슈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해답이 불가능한 질문을 거쳐 매일 주변에서 일어나는 해답가능한 문제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 성인이 되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를 확산해 나아가는 벡터(vector: 진로, 여기선 수렴과 확산의 개념에서 바깥쪽을 향해 퍼져나가는 성질의 것을 말함)를 가진 질문이라고 한다면, 안쪽으로 수렴해 들어오는 방향의 질문도 있다.

자신을 향한 사춘기의 질문

그것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식의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이를테면 사춘기의 청소년이 한 번은 자문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들은 부모로부터 태어나, 21세기의 한국에서 자라났다. 당연히 우리들의 사고방식에 현대 한국이 갖고 있는 특유의 시각이라든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치관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들이 스스로 원해서 몸에 익힌 것은 아니다. 이밖에도 알게 모르게 몸에 익숙해져버린 가치관이 무수히 많다.

이런 이유로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한 번은 의문을 느끼거나, 부정하고 싶어지거나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가치관을 모두 버리고, 처음부터 자신을 다시 만들 수는 없으니까. 반항하고 거부하면서도 자신이 이 세상의 일부인 것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면, 세상에 속한다는 것은 자신도 그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사람으로서 살아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세상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라는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기야말로 나는 나이며, 다른 누구와도 달리 바꿀 수 없는 존재라는 자기주의를 추구하는 기분이 강렬하게 싹트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누군가 대신 대답해 주길 바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기존의 해답을 다른 사람에게 구한다고 해서, 납득이 갈 리도 없다. 이러한 질문은 스스로 납득이 갈 때까지 생각하여, 만족할 수 있는 해답을 얻지 않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질문, 의문이 곧 철학이다!

세상이라는 대우주로 퍼져가든, 자기라는 소우주 속으로 침전되어 가든, 질문이 곧 철학의 시작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의 질문이 추구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이 철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철학의 영역을 결정한 네 가지 물음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나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둘째로,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셋째로,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세 가지 물음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질문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질문은 인간의 지성이 라닌 이성의 한계를 묻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인간의 행위나 실천 목표를 결정하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종교와 관련된 물음이다. 그리고, 칸트에게 있어 이 세 가지 물음은. 네 번째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으로 축약된다.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을 바래도 좋은 것일까라는 이런 여러 가지 질문들은 결국, 자신이란 존재의 한계를 명확히 하는 충동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들이 갖게 되는 모든 질문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싶다' 라는 기분으로부터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네 번째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칸트의 이런 명제를 이어받아, 스퐁빌은 이를 더욱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스퐁빌의 물음은 지금까지의 네 가지의 물음에 이어 다섯 번째 궁극적인 물음인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에 도달하기에 이른다.

우리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이전에 이미 삶의 진행 속에 있다. 헤엄치는 방법을 이미 안 상탸에서 헤엄을 치는 게 아니라, 물에 뛰어들고 나서야 헤엄치는 방법을 알게되듯, 살아가는 법도 실제로 살아가면서 익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려고 하는 반성적인 질문도 태어난 뒤에 갖게 되는 것이다.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를 알려고 하는 것은 현재진행형의 물음이다.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를 묻는 것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과 함께 진행해 가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만나게 되는 수많은 질문들이 그대로 철학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1. '철학은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위의 글에서 제시된 질문들을 찾아 나열해보자.

확산
이 세계는 끝이 있는 것일까?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수렴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칸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이성의 한계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인간의 행위나 실천 목표
바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종교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궁극적 물음, 존재의 한계


소크라테스는 공식적으로는 멜레투스라는 한 청년에 의해 이상한 신들을 섬기고, 순진한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로 아테네 법정에 고소되었지만, 사실은 정치가들이 이미 그를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협하는 위험한 인물로 간주해 놓은 터였다. 따라서 그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아테네 법정이 그를 무죄 방면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상태였다. 사형 당하느니 국외 추방형을 감수하라는 친구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원고 측과의 타협을 단호히 거부한다. 배심원들의 판결을 앞두고 마침내 마지막 변론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자 소크라테스는 아래와 같은 일장연설로 변론을 대신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오오 아테네 시민들이여, 저는 여러분을 존경하고 또 사랑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보다는 오히려 신에게 복종하겠습니다. 그리고 숨을 쉬는 한, 또 힘이 미치는 한, 지혜를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를 만나든 그를 격려해 주고, 그에게 제 생각을 말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평소 때와 같이 이렇게 말입니다. "오! 훌륭한 사람이여, 그대는 지혜와 정신의 힘에 있어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명성이 높은 나라인 아테네의 시민이면서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자기 것으로 만들까 하는 데에는 생각도 하지 않고 염려도 하지 않으니 부끄럽지 않은가?" (중략)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신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잘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신에 대한 저의 이러힌 봉사보다 여러분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은 이 나라에 생긴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돌아다니면서 하는 일은, 오직 여러분들 중 젊은이에게 나아가 많은 사람에게나, 될수록 정신을 훌륭하게 만들 것에 마음 쓰고 그보다 먼저 혹은 그와 같은 정도로 신체나 돈에 마음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득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돈으로부터 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덕에 의해 돈이나 그 밖의 모든 것이,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인간을 위하여 좋은 것이 된다." 그러므로 만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청년들을 부패시킨다면, 그것은 해로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그와 다른 말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러니 아테네 시민들이여, 이제 나를 돌려보내든 돌려보내지 말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이 어떻게 결정하든 내가 달리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란 것을 잘 알고 결정하십시오. 백번을 죽게 된다고 할지라도 달리 행동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략)

....마치 몸집이 크고 혈통은 좋지만, 그 큰 몸집 때문에 좀 둔한 말을 깨어있게 하려면 등에(가축들의 피부에 붙어 침을 쏘아 피를 빨아먹고 사는 파리처럼 생긴 곤충)가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신은 저를 마치 이 등에처럼 이 나라에 달라붙어 있게 하여 여러분을 깨우되, 하루 종일 어디나 따라가서 곁에 달라붙어 설득하고 비닌하기를 그치지 않게 한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잠들다가 깨워진 사람처럼 화를 내고, 아뉘토스의 말을 믿고 저를 때리고 경솔하게 죽이고 말 것입니다.


2. 소크라테스는 결국 타협을 거부하여 사형을 당하게 된다. 1번의 답에 쓴 질문들 중에서 어떤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신념으로 이러한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헤당 질문과 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신념을 정리해 보자.

인간의 행위나 실천 목표
지혜를 사랑하고, 숙고나 진리 그리고 정신을 훌륭히 하는데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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